경주 이씨

 



[image]}}}'''{{{#000 慶州 李氏 (月城 李氏)
경주 이씨 (월성 이씨)'''
}}}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이알평(李謁平)
'''중시조'''
이거명(李居明)
'''집성촌'''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상주시, 의성군
전라북도 임실군, 장수군, 정읍시
전라남도 완도군, 영광군, 고흥군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서구
울산광역시 북구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남도 보령시
경상남도 밀양시
'''인구'''
1,391,867명(2015년) | 국내 5위
1. 개요
2. 상세
3. 분적과 분파
4. 항렬
5. 실존인물
5.1. 35세[1]
5.2. 36세
5.3. 37세
5.4. 38세
5.5. 39세
5.6. 40세
5.7. 41세
5.8. 42세
5.9. 43세
5.10. 44세
5.11. 항렬 미상

[clearfix]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신라 7성의 하나. 신라 7성은 경주 이씨, 경주 최씨, 진주 소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 배씨[2], 경주 설씨를 말한다.

2. 상세


시조는 신라 6부 중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인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이알평은 6부의 대표 회의인 화백(和白)의 의장이었고, 6부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왕(王)으로 추대했다. 양산촌은 6부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초기 신라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왕성(王姓)은 아니었지만 이알평의 집안은 진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익재(益齋) 이제현[3]의 문하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 묘지문(墓地文)에 의하면 그 선계(先系)를 이거명(李居明)부터 기록하는데[4] 이거명은 신라 말 소판(蘇判) 벼슬을 하였다고 한다. 소판(蘇判)[5]은 신라 17관등제의 제3등에 해당하는데 제5관등 이상은 진골만이 오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거명(李居明)의 손자인 이금서(李金書)는 신라 경순왕의 딸 신란궁부인 김씨(神鸞宮夫人 金氏)와 혼인하였으니 경주 이씨 집안과 신라 왕실 사이 긴밀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칭(異稱)으로 월성 이씨(月城李氏) 또는 계림 이씨(鷄林李氏)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월성이나 계림은 경주의 옛 지명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전주 이씨(全州 李氏)도 그 역사는 경주 이씨보다 짧다.[6]
조선 시대에 경주 이씨가 배출한 상신(相臣)[7]은 대부분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 ~ 1618)[8]의 집안에서 배출되었다. 이항복은 서인(西人)에 속하였고, 그 후손들은 서인(西人)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화되면서 주로 소론(少論)에 속하였다. 영조(英祖) 때 영의정 이광좌(李光佐, 1674 ~ 1740)[9]는 소론의 거두로서 소론 온건파인 완론에 속하였다. 영조 4년(1728년)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여 몰락한 소론 강경파인 준론과 달리 완론은 이에 반대하여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조 때 좌의정 이태좌(李台佐, 1660 ~ 1739)[10]는 이광좌의 재종형으로 서인이었다가 소론에 가담하였다. 영조 때 영의정 이종성(李宗城, 1692 ~ 1759)[11]은 이태좌의 아들이고, 소론의 지도자로서 노론 유척기와 협력하여 사도세자의 보호에 힘썼고 후일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종묘의 장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광좌, 이태좌, 이종성은 모두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조선시대 말, 경주 이씨의 분적종인 합천 이씨 세보에서 발견된 시조 이알평과 중시조 이거명 사이의 실전된 35대의 계보가 발견되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
상당수의 이씨들이 경주 이씨에서 분관하였다. 분관이 확인된 본관이 여러 개이며, 기타 확인이 안되거나 불가한 여러 이씨 본관들이 경주 이씨에서 분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이씨 중에서 전주 이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가문으로 이씨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2015년 통계청 기준으로 약 139만명으로 성씨 본관 인구 순위 전체 5위다. 현재 경주 이씨보다 더 많은 본관 성씨는 김해 김씨#s-1, 밀양 박씨, 전주 이씨, 경주 김씨 뿐이다. 수도권과 전라도에 인구 비율이 높은 전주 이씨와는 달리 경주 이씨는 경상도에 인구 비율이 높다. 도내 인구 비율로 따진다면 경상북도, 충청북도, 경상남도, 충청남도순이다. 물론 모든 성씨들이 다 그렇듯이 인구 수만 따지면 수도권에 넘사벽으로 많이 살고 있다.
현재 경주 이씨로 유명한 사람은 이병철, 이건희, 이명희, 이재용,등 범 삼성그룹 일가, 그리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명박이 있고, 역사 인물 중에서는 고려말의 익재 이제현,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 헤이그 특사 3인 중 한 사람인 이상설, 대한민국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한 이시영등이 있다.

3. 분적과 분파


경주 이씨에 연원을 둔 분적종은 많은 듯 하지만 계대 확인이 어렵고 확인이 된 경주 이씨에서 본적종은 시조 후손에서 분적한 합천 이씨(陜川李氏), 차성 이씨(車城李氏)[12], 우계 이씨(羽溪李氏)[13] 와 중시조 후손에서 분적한 원주 이씨(原州李氏)[14], 아산 이씨(牙山李氏), 재령 이씨(載寧李氏), 진주 이씨(晋州李氏), 장수 이씨(長水李氏)[15]이다.[16]

경주 이씨의 14개 대파는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17], 이암공파(怡庵公派)[18],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19],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20], 사인공파(舍人公派), 판전공파(判典公派), 월성군파(月城君派)[21], 직장공파(直長公派), 석탄공파(石灘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교감공파(校勘公派)이다.[22]
이 14개파 중 주요 파는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이며 이 중 익재공파(益齋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가 경주 이씨의 대부분를 차지한다.[23] 그 중에서 익재공파는 전라도충청도에, 국당공파는 경상도충청도에, 상서공파는 수도권에 비교적 많이 분포하고 있다[24].
밀양 박씨와 마찬가지로 집성촌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포진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북 지역에 꽤 보기 드물다. 경주 이씨 집성촌을 보면 '''85% 이상'''이 남한 지역에 있고 나머지는 이북 지역에 있는데[25], 특히 국당공파는 이북 지역에 집성촌이 '''단 한 곳도 없다.''' 그러니까 밀양 박씨안동 권씨처럼 다른 본관에 비해 남한 지역에 편중되었다. 이것은 전주 이씨경주 김씨이북 지역에 인구집성촌이 많은 것과 대조된다.

4.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26][27] 보통 중시조 37~44세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으며 이중 흔히 보이는 세대는 중시조 38~42세이다. 다음의 항렬표는 중시조 이거명을 1세로하여 계산한 것이다. 경주 이씨의 분적종인 합천 이씨 문중이 자신들의 족보에 기재한 35대 실전세계를 사실로 가정하고 시조로부터 계산할 경우, 시조 이알평이 1세, 중시조 이거명은 시조 36세가 된다. 따라서 중시조 35~47세의 다음의 항렬표는 시조 70~77세에 해당한다. 이 집안도 세대 분포가 넓은 집안 소리를 많이 듣는다.
'''35세'''
○영(榮)
'''36세'''
규(圭)○
'''37세'''
종(鍾)○
'''38세'''
○우(雨)
'''39세'''
상(相)○
'''40세'''
○희(熙), ○형(炯)
'''41세'''
재(在)○
'''42세'''
○호(鎬), ○건(鍵)
'''43세'''
제(濟)○, 준(濬)○
'''44세'''
○동(東)
'''45세'''
병(丙)○, 심(心)○
'''46세'''
○교(敎), ○세(世)
'''47세'''
진(鎭)○
'''48세'''
○구(求)
특이하게도, 국당공파에서 갈라져나온 제정공파(霽庭公派)의 일부[28]는 설 립()자가 들어간 항렬자를 쓴다. 이는 조선 태조와 제정 이달충(李達衷)과의 일화 때문에 자손들에게 이 글자를 쓰라고 윤허했기 때문이다. 제정문정공신도비명 역문 중

5. 실존인물



5.1. 35세[29]


  • 이무영
  • 이석영 - 독립운동가. 이항복[30]의 직계 10대손.
  • 이시영 - 독립운동가. 이항복의 직계 10대손.
  • 이윤영 - 재헌의원, 前 사회부장관
  • 이인영 - 독립운동가, 13도 창의군 총대장
  • 이인영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 17·19·20대 국회의원
  • 이진영(1849)
  • 이진영(1890)
  • 이진영(1907)
  • 이하영 -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항복의 직계 10대손[31].
  • 이회영 - 독립운동가. 이항복의 직계 10대손.

5.2. 36세


  • 이규창 - 우당 이회영의 아들. 이항복의 직계 11대손.
  • 이규호(정치인) - 통일부 장관,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주 일본 대사, 한국교원대 총장, 한세대학교 총장 역임
  • 이인[32] - 법조인, 정치인, 초대 법무부장관

5.3. 37세



5.4. 38세



5.5. 39세



5.6. 40세


  • 이관형 - 법조인, 제11대 국회의원
  • 이건희 - 기업인,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막내아들.
  • 신태일 - 본명이 '이건희'(...)
  • 건희(이건희) - 1998년생, 보이그룹 원어스의 멤버.
  • 이달형
  • 이도형 -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 이도형(정치인) - 제6·7대 인천시의원
  • 이동형 - 시사 평론가
  • 이대형 - kt wiz 외야수
  • 이만희 -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제20·21대 국회의원
  • 이명희 - 신세계그룹 회장,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막내딸.
  • 이맹희 - 기업인,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
  • 이민희 - 다음카페 전통의 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운영자.
  • 이석형 - 前 3선 함평군수
  • 이시형 - 기업인,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아들이다.
  • 이양희 - 前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 제15·16대 국회의원
  • 이원형 - 前 한나라당 부대변인, 제16대 국회의원
  • 이영희 - 제3·4대 국회의원
  • 이용희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前 충청북도의원, 제9·10·12·17·18대 국회의원
  • 이인희 - 한솔그룹 고문,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장녀.
  • 이정 - 본명이 '이정희'[35][36]
  • 이정희 - 前 문경군수, 안동군수, 제3·4대 국회의원
  • 이중희 - 前 홍진종합건설 대표이사, 제11대 국회의원
  • 이지연 - 아나운서, 이상벽의 딸
  • 이찬희 - 범죄자.
  • 이창희 - 작곡가, 오우엔터테인먼트 부사장
  • 이천희 - 배우
  • 이철희 - 중앙정보부 차장, 대화산업 회장, 제10대 국회의원
  • 이철희 - 제20대 국회의원
  • 이탄희 - 전 판사, 제21대 국회의원
  • 이택희 - 제8·10·12대 국회의원
  • 이하늬 - 아버지 이상업은 경찰대학장, 국가정보원 2차장을 역임하였다.
  • 이상준(1968) - 한국노총 조직국장

5.7. 41세



5.8. 42세



5.9. 43세


  • 이지현[38] - 정치인, 제5대 서울시의원
  • 이제훈 - 배우

5.10. 44세


  • 이제동 - 前 프로게이머[39]

5.11. 항렬 미상



[1] 이하는 모두 시조가 아니라 중시조 기준이다.[2] 현재의 경주 배씨인지는 확인 불가. 유리 이사금 때 배씨 성을 하사 받았으나 경주 배씨의 시조인 배현경은 본래 성이 없던 사람으로, 고려 태조에게서 하사 받은 성이다.[3] 중시조 17세. 고려 제30대 충정왕이 폐위된 후 원나라에서 귀국길에 오른 제31대 공민왕은 그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진사대부들의 수장격인 이제현을 섭정승 권단정동성사(攝政丞權斷征東省事)에 임명함. 섭정승은 고려의 국무를 관장하였던 도첨의사사의 최고위직인 정승을 대리하는 직책이고, 권단정동성사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던 정동행성의 업무를 임시로 총괄하는 직책이다. 이제현은 명목상 고려왕이 겸임하던 정동행성의 최고위직인 승상에 임명된 것이다. 공민왕 귀국 후에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이색(李穡)이 그 묘지명(墓誌銘)에 '도덕의 으뜸이요, 문학의 종장이다(道德之首 文章之宗)'라고 평함.[4] 시조 이알평부터 원대손 이거명 사이의 계보 약 1천 년간이 실전되어 이거명의 선계는 알 수 없으므로,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여 계대수를 헤아린다.[5] 잡찬(迊湌), 잡판(迊判), 잡간(迊干)이라고도 한다.[6] 전주 이씨의 기원과 관련하여 당나라 기원설, 경주 이씨 기원설, 전주 지역 토착 성씨로 보는 설 등이 있다. 경주 이씨 기원설은 35대 실전세계에 근거한 것으로 이에 의하면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은 경주 이씨 시조 36~37세에 해당한다.[7] 조선시대의 최고관직으로서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의 3인을 가리킨다. 3상(三相), 3공(三公), 또는 3정승(三政丞)이라고도 한다.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총괄하였다.[8] 중시조 25세[9] 중시조 29세, 이항복의 4대손(현손)[10] 중시조 29세, 이항복의 4대손(현손)[11] 중시조 30세, 이항복의 5대손[12] 차성은 현재의 기장군[13] 우계 이씨가 시조 후손에서 나왔는지와 중시조 후손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 1988년판 경주이씨대종보를 보면 우계 이씨는 시조후손에서 나와 있는걸로 적혀 있지만, 1984년판 우계 이씨대동보를 보면 중시조후손에서 나온 걸로 적혀 있다. 하지만,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의 공식입장은 시조후손에서 나왔다고 말한다.[14] 안동 김씨처럼,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지는데 경주 이씨에서 분적한 원주 이씨는 (신)원주 이씨이다.[15] 조선 초기에 쓰시마를 정벌한 이종무 장군이 이 본관이며, 그의 후손이 화가 이중섭이다.[16] 평창 이씨의 경우는 2008년 3월 이전까지 경주 이씨에서 분적한 걸로 알려져 있으나, 평창 이씨의 시조인 이광(李匡)의 선대 조상이 허위로 밝혀져 분적도에서 삭제됐다. 하지만 평창 이씨 내에서도 이윤장을 시조로 하는 평창이씨 중앙종친회(정숙공계)와 이광을 시조로하는 평창이씨 대종회(익평공계)로 분열되었다.[17] 2008년 중앙화수회의 중재하에 평리공파와 성암공파가 통합에 합의하였다. 그로 인하여 중앙화수회의 분파도에서도 평리성암공파로 기재되어 있다.[18] 경주 이씨 14개 대파 중에서 가장 인원이 적은 종파이다. 1978년판 경주이씨대동보 중 제5권의 초반부 극히 일부에만 나오지만, 1988년판 경주이씨대종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2009년판 경주이씨 익재공파 대동보에서는 조금 언급되어 있기는 하다.[19] 현재 후손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재령 이씨 족보를 보면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겹치는 부분의 선대는 공민왕 때 인물로 추정되는데 재령 이씨 일세조와 같은 시기의 인물로 5대 정도 허수가 나온다. 겹치는 부분 후대를 살펴보면, 산술적으로 1540년대 인물로 나와야 하나 손자가 출생한 시기가 앞서 언급한 1540년대이므로 1~2대 정도 허수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문과방목을 보면, 겹치는 부분의 선대의 출생년도를 유추할 수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겹치는 부분 선대와 1대 차이가 난다. 참고자료1,2[20] 조선 중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이 속한 선대계파[21] 참고로 월성군파 파조(派祖)의 동생의 셋째 아들의 둘째 아들이 (신)원주 이씨의 시조이다.[22] 가장 장파(맏파) 순서에 의하여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부터 차례로 나열한 것이다.[23] 경주 이씨 각파별로 수록되어 있는 경주 이씨 대동보와 경주 이씨 대종보가 있다. 경주 이씨 대종보에 익재공파(益齋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의 책권 수는 무척 많아서 경주 이씨 총편을 제외한 44권중에서 차례로 이 세파가 14권, 13권, 6권이다. 따라서 경주 이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는 3권이다.[24] 집성촌은 같은 조상의 후손들이 정착 생활을 하던 농경시대 이야기고, 지금과 같은 인구 이동이 빈번해진 산업사회에서 그러한 것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25] 1930년에 실시한 국세조사(國勢調査)를 보면, 평안북도 박천군, 정주시, 함경남도 리원군, 단천시에도 각각 70호 이상 살았다.[26] 그러나 이건 집성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집성촌 밖에 있던 사람이 집성촌으로 오면 이 사람이 경주 이씨인지 모르는 확률이 높다.[27] 아래에 언급되는 항렬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오행상생법에 들어가는 부수에 맞춰서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로 들면, 39세에 상(相)○ 돌림을 병(柄)○, 40세에 ○희(熙), ○형(炯) 돌림을 ○렬(烈), ○섭(燮)으로 쓰는 케이스다.[28] 정확히는 이달충의 3남 이수(䇕)의 후손 중에서도 경북 북부(안동, 영주, 예천, 봉화 일대)에 세거하는 일파. [29] 이하는 모두 시조가 아니라 중시조 기준이다.[30] 중시조 25세이다.[31] 이시영, 이회영은 이하영의 14촌 동생으로, 이하영의 아버지 이유수와 이시영, 이회영의 아버지 이유승은 12촌 형제간이었다.[32]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아버지 이름이 35세손 영(榮)자 항렬을 써서 이종영(李宗榮)이다.[33]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친척 관계로 5촌 조카 이현우(본명 이상원)가 있다.[34]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아버지 이름이 38세손 우(雨)자 항렬을 써서 이찬우(李纘雨)이며, 아들 손자 증손자 다 항렬자를 쓰고 있다. 자세한 것은 범 삼성가 항목 참조.[35] 참고로 사촌지간이라는 이재훈과는 특이하게도 동급 항렬이 아니다. 아마도 촌수를 헷갈려서 잘못 말했거나 외가계열 4촌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우연이 너무(...) 게다가 친가계열이라고 말했으니 전자가 확실하다. 만약 친가쪽이어도 할머니 쪽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지만...[36] 앞서 말했다시피 경주 이씨는 전국에서 5번째로 인구수가 많은 집안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추측은 아니다.[37] 삼성그룹 이건희의 장남이자 현 삼성전자 부회장.[38] 아버지의 이름이 42세손 호(鎬)자 항렬을 써서 42세손 문단에 전술한 이방호(李方鎬)다. 그러므로 이지현은 43세손이다.[39] 친형 이효동과 함께 '東'(동)자 항렬을 사용한다.[40] 출처.